먼저 온 미래 | 장강명

2025. 8. 3. 17:09독후단상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있었다.

9년 후, 이 때의 충격을 바둑계는 어떻게 소화했을까?

 

ChatGPT를 위시한 수많은 LLM이 우리의 일상과 일자리에 섞여드는 지금, 우리보다 먼저 그 미래를 마주했던 바둑계의 감상과 대응이 퍽 흥미롭다.

우리는 기계와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진보'는 계속되어야 하고 지식은 절대로 억제되어선 안 된다는 관념에 감염되어 있다. 우리는 말로는 기계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지 사람이 기계를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계의 발달을 제어하려는 시도는 지식에 대한 공격이며 곧 일종의 불경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내가 이 일을 시작하던 시점인 5년 전에는 업무에서 AI를 사용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알파고 이전의 바둑계와 마찬가지로 업무 영역에서 AI가 대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소위 말하는 소프트웨어 공학에 어떤 '예술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코드', '코드에서 악취가 난다', '보기 좋은 코드가 유지보수하기 좋은 코드다' 등등... 프로그래밍에서도 암묵지에서 비롯된 모호한 용어들이 많았고, 이런 모호함과 다의성(多義性)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불과 2~3년 후에 Github copilot이 나왔고, 마치 내 생각을 읽는 듯한 자동완성과 코드 추천 기능을 보면서 크게 놀랐다. 개인적으로는 공부를 시작할때부터 달고 살았던 손목 통증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어 매우 기쁘기도 했고...

 

그리고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특히 최근에는 코드를 직접 작성하거나 수정하는 일이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Cursor, Windsurf, Kiro등 AI IDE에게 내 의도를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그 과정에서 함께 논의하고 세부 구현을 맡기는 일이 나의 (개발쪽 업무에서는)대부분의 업무 방식이 되었다.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Claude Code를 비롯한 Agent AI에게 내 업무의 맥락을 위임할 수 있을지, 암묵지를 문서화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맥락이 충분히 담겼다고 판단되면 Agent에게 계획 수립부터 구현까지 전부 맡기기도 한다.

 

바둑계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밍 업계도 AI와의 업무에 대한 반응은 어느정도 나뉘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속한 업계가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업계이며 때문에 패러다임의 변화를 어느정도 예측하고 한 발 앞서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몇 달 전, CX팀의 불편함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작은 프로그램을 AI로 구현한 적이 있다. AI의 도움을 받아 매우 적은 나의 리소스로 구현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지만, 해당 프로그램을 사용한 이후 CX팀의 생산성이 올라 채용 계획이 백지화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기분이 참 묘했다. 그만큼의 비즈니스 임팩트를 짧은 시간에 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고무적이었지만, 어쩌면 우리 회사에서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그 직원분들에게는 개인이 감당 혹은 인지할 수 있는 영향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주니어 개발자 채용을 하는 회사를 보기가 정말 힘들어졌는데, 각 기업들의 현장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아직까지는 AI가 시니어 개발자 만큼의 풍부한 경험과 맥락에서 오는 포괄적 구현,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없으니까. 현재 수준의 AI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니어 개발자들을 데리고 개발하던 시니어 개발자일 테니까. 주니어 개발자 정도의 구현은 시니어 개발자들이 추가로 지출하는 월 $200정도면 충분하니까.

 

빅테크 기업들이 앞다투어 프로그래밍 AI를 개발하는 이유는 그 시장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즉, 프로그래머들이 몸값이 높기 때문이다. 몸값이 훨씬 비싼 시니어 개발자들도 대체하려고 최선을 다 하겠지. 그 때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할까?

 

뻔한 질문은 그만두고, 앞으로의 시대에 개발자들은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할까?

 

AI의 역량에 대해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지만, 나는 '주도성'이 우리가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이라고 믿는다. 문제 발견과 해결책 수립, 그리고 구현이라는 3단계 과정은 비단 개발 영역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서 본질적인 프로세스라고 생각하는데, 이미 문제 발견과 해결책 수립에서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구현은 거의 비용이 들지 않을 정도로 AI가 이미 잘 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발견하려고 하는지, 본질적으로 문제 자체를 해결하고 싶은지는 오롯이 인간의 주도성(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라고 치환해도 될 것 같다)이 기여한다.

 

책에서 던지는 질문들이 참 많은데, 저자와 나를 포함해서 현 시점에는 누구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성은 무엇인가. 우리가 하는 업무에서 AI의 도움을 받는것과 AI에 의존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치에 대한 평가 주체는 누가(무엇이) 될 것인가. 우리가 잃게 될 것, 얻게 될 것들은 무엇일까.

 

여담이지만, 저커버그가 말하는 개인화된 초지능의 시대가 와도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진 않을게 분명하다. 제 2의 1984를 누가 집필해줬으면 좋겠다. 2084같은 제목으로...

 

 

 

먼저 온 미래 | 장강명 - 교보문고

먼저 온 미래 |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2016년 이세돌-알파고 대국 이후 바둑계에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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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이신 장강명씨의 부인이자 그믐 대표이신 김새섬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