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의 회고록
잡담

지난 1년의 회고록

목차 

       - 고민

       - 흥미

       - 시작

       - 열심

       - 결실

 

고민

작년 여름.

 

나는 1년 정도 일하던 쿠팡 사무직을 그만두고 그저 하염없이 실업 급여를 받으며 놀고 있었다.

나이는 어느덧 28살에 진로마저 불확실한 상태였지만, 다행히 독립 후 혼자 살면서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였다.

 

물론 노는 와중에도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과 불안감이 있던 나날이었다.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기에, 남들이 한다는 공기업 준비도 하는 척 해보고, 코레일에서 사람을 많이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코레일을 목표로 한 척 NCS준비도 해보고... 

 

분명히 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인데,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없는 힘든 시기.

그런 시기였다.

 

다행히 나 자신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내 미래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해보곤 했다.

 

여태까지 내가 했던 일 중,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일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 지루한 일

- 반복적인 일

- 생산적이지 않은 일

- 왜 하는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일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은 정해져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수능 공부는 괴로운 것이고 고3이 힘든 시기라고 말하지만, 나는 수능 공부가 나름 즐거웠다.

성적이 오르는 것 뿐만 아니라 문제 푸는 행위 자체를 즐기곤 했다. (부모님은 믿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덕분에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그 당시엔 딱히 해보고 싶은 게 없었다는 거?

 

그나마 흥미 위주로 우선순위를 정렬한다면 맨 위에 위치한 게 개발이었다.

 

제일 흥미로웠다고는 하지만... 수치로 따지자면

- 1위 개발. (흥미도 14/100)

- 2위 ...

이런 느낌?

 

기껏 경영학과에서 4년을 보내고 나서, 접점이라고는 (거의) 없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생각을 하니 나 스스로도 일종의 도피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많이 망설여졌다.

 

그런 기분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개발을 공부해 보려고 한다는 말을 하기 창피하기도 했지만, 고맙게도 당시 내 옆에서 아낌없는 응원을 해준 친구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그에게 감사함이 앞선다.)

 

 

흥미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무작정 본격적인 공부를 할 수는 없었다.

일단 내가 이 분야에 최소한의 소질은 있는지, 적성에 맞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시장 상황이나 전망은 그 당시 내게 중요하진 않았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개발자가 아직도 박봉에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IT 3D 업종이라고 알고 있었다.

(지금도 그런 분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처우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내가 최소한의 소질과 적성을 가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생활코딩에 무료 강의가 많다고 해서 기웃거려보고,

어디에 또 무료 동영상 강의가 있다고 해서 기웃거려보고...

 

내가 '기웃거렸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정말 '기웃거리기만' 했기 때문이다.

아무 곳에서도 내 흥미를 끄는 요소를 찾지 못하던 중, 코드잇이라는 인강 사이트가 입문자에게 괜찮아 보였다.

 

 

코딩이 처음이라면, 코드잇

월 3만원대로 Python, JavaScript, HTML/CSS, Java 등 1,600개 이상 프로그래밍 강의를 무제한 수강하세요

www.codeit.kr:443

코드잇 홍보 아님

 

싼 가격에 Python이라는 쉬운 언어로 프로그래밍 기초를 들으면서 개발이라는 과일의 껍데기 맛만 봤다.

 

장점은

저렴한 가격, 짧은 인강 단위(보통 3~10분), 바로 실습 가능한 구조, 비 전공자도 이해하기 쉬운 강의 수준 등이 있었다.

 

단점은

내가 이 강의를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듣더라도 절대 개발자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이 강의를 통해서 개발자가 되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개발에 흥미가 있는지를 체크한다는 관점에서는 실보다는 득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는 인강도 듣고 알고리즘 문제도 풀고 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차 확고해졌다.

 

 

시작

비 전공자가 개발 공부를 시작하는 데 있어서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 뭐가 있을까?

다양하지는 않을 것이다.

 

1. 독학

2. 국비 학원

3. 사설학원

 

이 정도라고 생각한다.

 

 

1. 독학

사실 뭘 알아야 독학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비 전공자가 독학을 할 수 있다고?

물론 평소에 개발에 취미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하던 사람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찾아서 스스로 공부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라면 독학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 개발에 입문하는 나는 선택지로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2. 국비 학원

국비 학원에 대해 알아보면서, 국비 학원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말 그대로 '찍어내고' 또 그 사람들이 어떻게 '소모되어' 가는지에 대한 자료를 굉장히 풍부하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땅한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무료로 몇 개월 이상의 학원 강의를 제공하고 심지어 교통비라는 명목으로 용돈까지 챙겨주는(!!) 시스템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3. 사설학원

대부분의 학원들이 돈이 무지막지하게 들어서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못)았다.

학원마다 대동소이하지만 총 600 ~ 900 만원 정도? 혹은 그 이상의 비용을 요구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취업 후 연봉 20%씩 떼간다는 모 업체는 진짜 양X치 라고 생각한다... 기준도 3000만원으로 낮은 편이고... )

 

국비 학원을 가기로 일단 결정을 하고, 수강을 위한 행정적인 처리를 하고 나니 8월 중순쯤이 되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소문이 난 학원을 찾아서 홍대에 있는 쌍X강북교육센터에 9월부터 하는 과정에 신청을 했다.

 

코스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길 "국비 학원은 어떤 과정이던 다 자바 - html, css, js - 스프링 코스인데 이름만 다르다" 라고 하길래 상관없겠거니 하고 배우러 갔다.

 

학원에서도 커리큘럼별로 배우는 내용에 큰 차이가 없다고 안내해줬다.

 

 

결론만 말하자면, 1달이 된 시점에 때려치우고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1. 강사분이 큰 의욕이 없다

분명히 강사분이 못 가르치시거나 불성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권태로운 분위기에서 의욕 없음의 오오라가 뿜어져 나왔고, 그 디버프가 내 열정까지 식히는 것 같았다.

 

2. 분위기

학원 내 분위기는 정말 좋게 말해서 고3 수능 끝난 교실 같았다. 소란스러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간이 좀 되어보이는 옆 교실은 연애를 하고 아주 난리가 났다.

 

3. 막히는 흐름

어려운 수업이 아닌, 단순히 오라클 회원가입을 하고 자바를 설치하는 과정에서도 쩔쩔매며 멈추는 수강생이 많았다.

코딩을 하면서는 아예 따라 치기 수준의 미션에도 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솔직히 말하면 시간이 아까워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왜 다른 사람의 오라클 설치를 30분 넘게 기다려야 하지...?

 

4. 느린 진도

흐름이 막히다 보니 진도가 빠를 수가 없었고, 느린 진도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8시간 이상을 학원에서 앉아서 보내다 보니 집에 오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학원에 오고가는 시간 2시간을 더하면 10시간을 학원에 소비하는 셈인데, 얻는건 2시간 분량정도 되는 것 같았다.

 

 

종합적으로, 이 과정을 4개월이 아니라 4년을 해도 괜찮은 개발자가 될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뛰쳐 나왔다.

 

 

열심

학원에서 나오고 나니 대안이 필요했다.

당연히 아직 독학을 할 수준은 아니었기에, 나는 사설 학원을 알아보게 되었고 그러다가 나름? 괜찮아 보이는 학원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학원을 다니기 위해 집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중, 고등학교를 통틀어서 과외 한 번 해달라고 한 적 없는 내가, 나이 28살에 처음으로 강력 지원을 요청하니 집에서도 흔쾌히 지원을 해 주셨다. 부모님껜 항상 감사하고 있다. (대신 독립된 환경에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학원은 여러 의미로 다사다난했다.

 

기초 단계와 응용 1 , 2 단계로 나눠져 있는데, 학원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과정 이름을 들으면 아는 사람들은 대충 알 거라고 생각한다. 악평이 많은 학원인데, 개인적으로는 가성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2021년 기준으로 요즘은 가격 올라서 메리트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기초 단계에서의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었다.

열정이 있는 시기에 나를 열정적으로 서포트해준 강사님이 있었고(지금도 너무 감사드린다), 열심히 함께 할 수 있었던 동료들이 있었다. 이 시기에 얻은 자신감과 학습 프로세스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나에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응용 1단계에서의 만족도는 6/10점 정도였다.

이별이라는 개인적인 사건도 있었고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해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에서 배우고 또 늘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짓거리를 왜 해야하지...? 이게 개발자가 되는거랑 무슨 상관이지...?'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현자타임이 쎄게 왔는데,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학원이 오글거리게 찌질한 포인트들이 있었다)

 

응용 2단계는.. 1/10점 정도였다.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한창 달리고 싶은 시기에 갑자기 멈춰버린 느낌이 강했다.

자세한 내용은 적지 않겠지만, 여러 부분에서 정말 많은 실망을 하게 되면서 나는 학원을 나와 구직을 하게 되었다.

 

 

정신없이 학원 생활을 하다가 세상으로 나와보니, 어느덧 2020년 8월이었다.

 

결실

학원을 나오면서 내 손에 주어진 건 다음과 같았다.

 

자바 스윙으로 만든 게임

안드로이드 앱

PHP 웹

언리얼 4게임

창업경진대회 출품작

 

모든 작품이(지금 생각하면) 조악하지만 학습 기간과 기여도(100%)를 생각한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신입 포트폴리오를 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포트폴리오는 내 서버에 올려 웹에 배포하기로 계획했다.

(이 당시에 홈 서버를 구축하면서 DDNS 설정을 해 놓은 상태였다)

 

웹 개발은 PHP, JS, 부트스트랩을 통한 스파게티 코드로만 해보고 최신 프레임워크를 써보지 않았었다.

백엔드 로직도 PHP 경험뿐이라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최신 기술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React로 Front를 꾸미고, Django에서 정보를 보내주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프레임워크 학습, 기획, 제작을 마치는데 2주 좀 넘게 걸렸다.

 

부끄럽지만 조심스럽게 첨부해본다.

 

 

JongHak's Resume

 

unqocn.hopto.org

 

자바, 안드로이드, PHP, 언리얼 4 엔진(C++), 최근에는 JS까지.

그 동안 건드려보긴 많이 건드려봤지만, 뭐 하나 진득하게 해 본 영역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포지션으로 지원을 할지 고민이 많았다.

 

최근에 JS를 하면서, 그리고 리액트로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프론트엔드 개발에 재미를 한창 느끼고 있어서 일단은 프론트엔드를 먼저 넣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론트를 제일 하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구직을 시작하며 약 일주일에 걸쳐 원티드에서 40여 곳, 사람인에서 약 30여 곳에 지원을 했다.

신입 구인이 생각보다 적어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3년 미만 지원 공고에는 모조리 지원을 했다.

 

지원을 하는 와중에는 학원에서 같이 공부한 동생과 함께 기술면접 대비도 나름 성실하게 했다.

(막상 면접에서는 기술적인 내용보다는 나라는 사람 자체 혹은 기업 문화와의 조화가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결과는?

 

서류 통과로 연락이 온 곳은 7곳, 그중에서 3곳에서 면접을 봤고, 2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마침 마음에 드는 비전과 문화를 가진 회사에서, 감사하게도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 후 처음 보내는 주말에 문득, 내 지난 1년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처 없이 적어보았다.

 

다사다난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늘 그렇진 못했지만) 지난 1년을 정리하면서, 힘을 준 주변 가족들, 친구들, 강사님에게 감사한 마음만 더욱 커진다.

 

난 개발이 즐겁고, 개발자로의 커리어에 대한 욕심도 많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잘 모르지만,

회사도 마음에 들고 함께 일하는 동료분들도 다들 좋은 분인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얼른 더욱더 열심히 해서 주변 동료와 세상에 더 도움이 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년 회고록을 작성하고도 4개월.

 

직장생활이 어느정도 궤도에 들면서 다시 한 번 이 글을 찾았다.

 

나름 만족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조만간 6개월 회고록 등을 통해서 근황을 남길 계획이다.